'구미호 여우누이뎐'이 본격적인 전면전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구미호(한은정) 만신(천호진) 윤두수(장현성) 양부인(김정난)에 윤초옥(서신애)까지 주요 인물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며 확실한 대립 구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존재감이 강해지는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만신이죠. 신비스러운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며 공포스러운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만신이 등장하는 순간에는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조성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존재감의 '폭주' 차원에선 양부인을 최고로 꼽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중반부까지 조용하고 미약했던 존재감이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친 존재감으로 변신하고 있거든요. 귀티나는 양반 부인에서 실성한 여인으로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는 근원은 모성애였습니다.
양부인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양부인은 전형적인 양반댁 마님 캐릭터로 신분제도와 유교사상에 등 조선 사회상을 설명하는 인물입니다. 물론 남다른 모성애로 인해 일부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긴 합니다만. 당시 시대상에서 충분히 납득될 만한 행동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시대상을 놓고 볼 때 양부인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캐릭터여야 합니다. 드라마 전개 상에서도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이의 간을 먹고 살아난 초옥에게 연이의 혼이 빙의되면서 양부인은 폭주 양상으로 변신했습니다. 신분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됐죠. 오직 초옥이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신분에 걸맞지 않는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급기야 초옥이의 가슴에 칼을 겨누는 행동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과도한 모성애의 발현이었죠. 윤두수가 이를 두고 볼 리 없을테고 집에서 내쫓기에 이르게 됩니다. 내쫓긴 이후엔 더욱 실성한 듯 초옥이를 되찾기 위한 행동을 하고, 만신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합니다. 결국 초옥이의 가슴에 칼을 꽂게 되죠.
모든 게 초옥이를 향한 모성애 때문입니다.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모성애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되고, 그토록 딸의 가슴에 칼을 꽂게 됩니다. 정말로 모든 걸 다 잃을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셈입니다. 양부인의 미친 존재감이 '구미호 여우누이뎐'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모성애는 세상 무엇보다 강한 것이기에 양부인의 존재감은 더욱 강렬해질 운명이죠. 그 상대가 인간보다 월등한 힘을 지닌 구미호라고 할 지라도 말입니다. 지금까지 극중에서 구미호에 대적할 상대로는 만신을 비롯한 퇴마사 일당 정도만이 꼽혀왔지만, 모성애로 존재감이 폭주한 양부인은 오히려 위세를 역전시킬 정도의 힘을 갖게 됩니다.
결국 초옥이를 되찾는데 성공했고요. 구미호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보름달이라는 예기치 않은 환경 때문에 구미호 처단에 실패하고 오히려 죽음의 위기를 맞기도 했죠. 돌아온 초옥이의 "어머니"라는 한마디가 목숨을 구해줍니다. 구미호의 모성애가 양부인으로 하려금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주는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사실 '구미호 여우누이뎐'을 보면서 답답하긴 합니다. 구산댁으로 사는 구미호가 위기를 맞으면 좀 빨리 구미호로 변신해 통쾌하게 적들을 물리쳐도 될 것 같은데, 한참 동안 시달린 다음에야 구미호로 변신하기 때문에 당할 건 다 당하거든요. 연이도 그렇게 해서 목숨을 잃었죠. 초옥이에게 빙의된 연이 역시 쫓겨나고 말았고요.
구미호가 구미호 답지 못하다 보니, 작품의 전개가 순조롭지 못하고 긴장감을 좀더 고조시키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만신이 등장할 때 치솟은 긴장감이 정작 구미호가 등장하면 내려 앉으니 연출자께서는 좀더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겠죠. 특히 구미호와 양부인의 모성애가 충돌하는 과정도 좀더 다이내믹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결국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모성애로 집결되는 것 같거든요. 구산댁이 딸 연이를 죽게 만든 초옥이를 그토록 아끼고, 양부인이 자신의 모든 걸 버려가며 초옥이를 되찾으려 하는 것 모두 결국엔 모성애 때문일 테니까요.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구미호와 양부인의 모성애의 대결이 결과를 말해주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왠지 비극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점에서 모두가 패자가 되진 않을까 하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하게 되긴 합니다. 권선징악이라는 사극의 주요 주제를 놓고 볼 때 패륜적인 행동을 한 윤두수, 양부인, 만신 등은 처단을 당해 마땅하지만, 꼭 그렇게 귀결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동이'와 '자이언트'라는 대작들 사이에서 비교적 선전했습니다. 조금 허술한 작품들이랑 경쟁했으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아역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초반부엔 연이(김유정)가, 중반 이후엔 초옥이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특히 빙의된 초옥이가 아버지 윤두수를 칼로 찌르는 장면은 압권이었죠. 한국 드라마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서신애가 대단한 연기파 배우의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서신애는 연이의 혼이 빙의된 초옥이를 연기할 때는 김유정의 목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마치 실제로 빙의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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